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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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카타콤베 (A)
09:50 키르쿠스 막시무스 (B)
10:40 콜로세움 (C)
11:40 포로 로마노 (D)
13:30 베네치아 광장 (E)
15:00 트레비 분수(F)
16:00 바티칸 시국 & 성 베드로 대성전
16:45 스페인 광장
🔅 투어는 일정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습니다.
카타콤베
카타콤베(Catacombe)는 주로 로마 시대에 형성된 지하 공동묘지로, 초기에는 사도 또는 순교자들이 매장된 장소였다가 점차 박해받던 크리스트교도와 서민들의 묘지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3세기 로마 제국의 박해 시기, 신자들은 이곳에서 집단 예배와 순교자 추모를 하였습니다. 카타콤베는 로마 외곽에 집중되어 있으며, 석회암 토양 덕분에 땅 속을 깊게 파서 총연장 1,000km 이상의 복잡한 구조를 지녔습니다. 대표적으로 산 칼리스토, 세바스티아누스, 도미틸라 등이 있습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에는 묘지로서 의미가 쇠퇴하고 신앙적 성소로 변했습니다. 현재는 독특한 장례문화와 초창기 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관광·문화 유산으로 보전되고 있습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차 경기장이자 대중 오락 공간으로,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 사이의 계곡에 위치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로마 왕정시대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가 처음 조성했으며, 이후 로마 공화정과 제정 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확장과 개축이 이루어져 최종적으로 길이 약 621m, 너비 118m, 관중 수용 능력은 15만 명 이상에 달했습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주로 전차 경주가 열렸던 장소로,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대중 스포츠 경기장이었습니다. 매년 9월 열리는 로마 대제전에서는 전차 경주가 절정으로, 경주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오늘날의 스포츠 스타처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다양한 축제와 종교 행사, 공개 연회 등이 개최되며 로마 사회 전반의 중요한 문화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는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그리스 문화에 영감을 받은 ‘네로니아’라는 대회를 열어 전차 경주뿐 아니라 시, 음악, 운동 경기를 포함한 종합 축제 형태로 발전시켰고, 그 자신도 전차 기수로 참여해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런 행사는 황제와 권력자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 정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화재 위험이 항상 존재했고, 특히 서기 64년 네로 시대 발생한 대화재는 키르쿠스 막시무스 주변에도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황제들은 경기장을 재건하고 확대하여 운영을 계속했습니다. 피날레 전차 경주는 서기 549년에 치러졌으며, 이후 경기장은 점차 쇠퇴했습니다. 오늘날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원형 경기장의 자취만 남아 있으며, 그 웅장했던 과거를 상상할 수 있는 역사적 유적지로 보존되어 로마 여행의 필수 방문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고대 로마인들의 열정과 문화, 정치적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그 규모와 역사적 의미에서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세계적인 문화 유산입니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으로, 로마의 플라비우스 왕조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가 서기 70년에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서기 80년에 완성하고 공식적으로 개장했습니다. 콜로세움은 높이가 약 48~50m, 길이 188~190m, 폭 156m에 이르는 거대한 타원형 구조로, 당시 최대 5만 명에서 8만 명까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던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경기장은 로마 시민들에게 검투사 경기, 야생동물 사냥, 모의 해전(네로 황제가 수로를 만든 것과는 별개로 후대에 가능), 공개 처형, 신화적 이야기 재현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정치적 목적을 띠어 황제와 귀족들이 시민의 지지를 얻는 데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콜로세움의 외관은 4층으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층에는 고대 그리스의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층층으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건축미를 보여줍니다.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 출입을 위해 80개의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어 신속한 입출입이 가능했고, 각 출입구에는 번호가 매겨져 좌석으로 쉽게 안내할 수 있었습니다. 내부는 복잡한 아치와 콘크리트 등 당시 신기술이 접목된 구조로 설계되어 안정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관중석 아래에는 ‘하이포지움’이라고 불리는 지하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검투사 대기실, 야생 동물 우리, 무대 장치 등이 위치해 있었습니다.또한, 경기장 위에는 ‘벨라리움’이라 불리는 대형 가죽 차양이 설치되어 햇빛과 비를 막았으며, 로마 시민들이 쾌적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 차양은 여러 돛새김 천으로 이루어져 해군 병력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콜로세움은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건축물이며, 로마의 정치적·사회적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수백 년 동안 전투나 재난(예: 5세기 지진)과 약탈로 인해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고, 중세에는 성채나 주택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복원과 보존 작업을 통해 지금은 로마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Forum Romanum)는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중심 광장으로, 로마 구도심 몬티 구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 로마 왕정시대부터 형성되었으며, 원래는 습지대였던 이곳을 간척해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설립자 로물루스 시대부터 이미 중요한 공공 장터이자 광장 역할을 했고, 초기 왕정 시대에는 정부 건물과 신전들이 세워졌습니다.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는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신전과 여사제 거주지를 설치하며 종교적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로마 공화정에 접어들면서 포로 로마노는 정치적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개선식, 공공 연설, 재판, 선거 등 국가적 중요 행사가 열렸고,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사투르누스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 등 주요 신전들이 자리 잡아 다양한 종교 의식이 거행됐습니다. 또한 시민과 정치인들이 만나 선거 운동을 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장소이자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술라가 포럼을 대리석으로 포장하는 등 수차례 정비와 확장이 이루어져 로마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로 로마노를 대대적으로 개축하며 정치적 위상을 높였고, 그의 암살과 그 후 시신 화장도 포럼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제정 시기에는 트라야누스 포룸과 같은 새로운 포룸의 등장으로 경제적 기능은 일부 분산되었지만, 여전히 정치적·종교적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원로원 회의장, 개선문, 황제들의 기념비와 조형물이 곳곳에 세워져 로마 제국의 권력과 번영을 상징했습니다. 중세 이후 포로 로마노는 점차 쇠퇴하며 폐허가 되었지만, 17세기부터 고대 로마 복원 작업과 발굴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문명과 정치, 종교, 경제 활동이 집중된 장소로,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고대 로마인의 일상과 제국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으며, 로마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광장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피아자 베네치아)은 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중요한 역사적 광장입니다. 광장의 이름은 근처에 있는 15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팔라초 베네치아 궁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궁전은 과거 교황청과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관으로 사용되었고, 후에는 무솔리니가 머물며 정치적 상징성이 커졌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인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대규모 기념물은 불멸의 불꽃이 타오르는 무명용사의 무덤을 포함하며, 로마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어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베네치아 광장은 정치적 행사와 시위가 자주 열린 장소로, 무솔리니가 권력을 과시한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건축물이 어우러져 있고, 주변에 포로 로마노 등 주요 고대 유적지도 가까워 로마 관광의 핵심지입니다. 또한 쇼핑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바로크 양식의 분수로, 높이 26.3m, 너비 49.15m에 달하는 대규모 예술 작품입니다. 이름 ‘트레비’는 ‘세 갈래 길’을 뜻하며, 세 개의 길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았습니다. 분수 중심에는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이 자리하고, 그의 양쪽에는 잔잔한 바다와 거친 바다를 상징하는 두 트리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분수는 고대 로마 시대의 아쿠아 베르지네(Aqua Virgo) 수로가 끝나는 지점에 세워졌는데, 이 수로는 약 13km 떨어진 곳에서 청정 지하수를 로마 시내로 공급해왔습니다. 현재의 트레비 분수 건축은 18세기 초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주도했으며, 1732년 착공해 176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분수의 설계와 조각은 니콜라 살비와 피에트로 브라치 등 유명 예술가들이 맡았습니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역사와 예술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장소이며, 특히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로 유명합니다. 이 전통에 따라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빕니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문화와 신화를 담은 상징적인 명소입니다.
바티칸 시국 &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시국(Vatican City)은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 국가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의 영적 본거지입니다. 전체 면적은 약 44헥타르(약 0.44㎢)로, 인구는 약 800명에 불과합니다. 1929년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독립 주권을 공식 인정받아 주권 국가로 설립되었으며, 교황이 국가 원수이자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종교적·정치적 권력을 행사합니다. 바티칸 시국은 신권 군주국 체제로서, 국가의 행정과 정치적 기능은 교황청(Curia Romana)이라는 종교기관이 담당합니다. 국가의 실질적 운영은 성직자와 수도자에 의해 이루어지며, 자체 우편국, 은행, 방송국, 법원, 군대(스위스 근위병단) 등을 운영하는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교황청 직원, 종교인과 경비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티칸이 자리한 바티칸 언덕은 고대 로마 시절에는 신성하지 않은 땅으로 여겨졌으나, 기독교가 발전하며 순교자 사도 베드로가 묻힌 신성한 장소로 인식되었습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베드로 무덤 위에 최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바티칸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후 여러 차례 재건과 확장을 거쳐 현재의 웅장한 바로크 양식 대성당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길이 약 220m, 너비 150m, 돔 높이 약 136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거장인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라파엘로 등이 설계와 건축에 참여했으며, 특히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중앙 돔은 로마의 상징적 건축물로 꼽힙니다. 성당 내부에는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으며, 수많은 예술품과 성물이 안치되어 있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성 베드로 광장은 베르니니가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대광장으로, 반원형으로 광장을 둘러싼 칼럼은 방문자들에게 장엄하면서도 포용적인 공간감을 선사합니다. 이곳에서는 교황이 대중 강복과 다양한 공개 행사를 진행하며, 전 세계 신자들이 모여 기도와 축복을 받는 장소로 유명합니다. 바티칸 내에는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이 위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유명합니다. 바티칸 박물관은 16세기 설립 이래 교황청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과 고고학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은 미술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박물관과 성당을 찾아 역사와 예술의 깊이를 체험합니다. 역사적으로 바티칸 시국은 중세 유럽에서 강력한 교황권의 중심지로서, 교황령(Papal States)의 본거지였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운동 시기 교황령 대부분이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어 교황권은 약화되었으나, 1929년 라테라노 조약으로 독립국가로 재탄생하며 주권 국가로서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현대의 바티칸은 종교적 영적 지도자 역할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다양한 국제기구와 협력합니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인권, 평화, 국제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내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입니다. 스위스 근위병단은 바티칸의 경비를 담당하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티칸 시국은 종교적 성지이자 세계 문화유산으로서 종교와 예술, 역사와 문화를 응축한 특별한 국가입니다. 신앙의 깊이와 더불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예술적 유산, 그리고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바티칸은 전 세계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에게 영감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은 인류 역사의 소중한 보물이며, 바티칸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빛내며 세계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스페인 광장
로마의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은 로마 중심에 위치한 유명한 광장으로, 이름은 17세기 이곳에 있던 스페인 대사관에서 유래했습니다. 광장의 핵심 명소는 18세기 초 완성된 ‘스페인 계단(Spanish Steps)’으로, 135개의 대리석 계단이 광장과 위쪽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를 연결합니다. 이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17세기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명으로 피에트로 베르니니와 그의 아들이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습니다. 이 분수는 테베레 강의 홍수를 상징하는 잠긴 배 모양으로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스페인 광장과 계단은 오랜 세월 로마의 문화와 예술, 사회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도 여기서 생을 마감하는 등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인기 만남 장소지만,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광장과 계단에서 앉거나 먹는 행위는 금지되고 있습니다. 로마를 찾는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명소입니다.
먹거리 (식당 및 카페)